분산투자를 하려고 ETF를 하나 더 샀습니다. 미국 대표지수를 담고, 성장주를 더하고, 반도체에도 나눠 투자합니다. 계좌에 담긴 상품 이름은 늘어났으니 위험도 골고루 나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새로 산 ETF의 상위 편입 종목에 이미 가지고 있던 기업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면 어떨까요. 투자 상품은 늘었지만, 내 돈이 기대고 있는 기업은 생각보다 달라지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투자자 교육 자료도 여러 펀드나 ETF를 보유할 때 상위 편입 종목이 서로 다른지 확인하라고 안내합니다.[1]
피제나 자산운용은 2026년 3분기 보고서에서 이 문제를 한 단계 더 밀고 들어갑니다. 지수와 비슷하게 움직이는 것과 위험을 분산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특히 AI라는 성장 이야기가 여러 기업의 주가를 함께 설명하는 환경에서는, 종목 수만으로 계좌의 성격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주장입니다.[2]
상품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내 돈이 들어간 비중입니다
ETF 하나에는 많은 기업이 들어 있습니다. 다만 기업이 많이 들어 있다고 해서 모든 기업을 비슷한 금액만큼 보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S&P 500처럼 실제로 거래 가능한 주식 수를 반영한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비중을 정하는 지수에서는 규모가 큰 기업이 지수 움직임에 더 큰 영향을 줍니다.[3]
여기에 ETF를 하나 더 얹었다고 분산 효과가 자동으로 커지는 것도 아닙니다. 두 상품에 같은 기업이 들어 있다면, 계좌 전체에서는 그 기업에 대한 보유액을 합쳐 봐야 합니다. 상품별 편입 비중만 보고 안심하기보다, 각 상품에 넣은 돈까지 반영해 살펴봐야 하는 이유입니다.[1]
피제나는 2026년 9월 말 기준 분석에서 S&P 500 상위 10개 기업의 비중을 약 41%로 제시했습니다. 지수 전체를 산다는 선택 안에 상위 기업들에 대한 상당한 노출이 함께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는 해당 보고서의 기준일 수치이지, 지금 이 순간의 편입 비중이라는 뜻은 아닙니다.[2]
그래서 분산 여부를 볼 때 첫 질문은 “ETF를 몇 개 가지고 있는가”보다 “내 돈이 어느 기업에 얼마나 들어가 있는가”에 가까워야 합니다.
수천 개의 종목을 담았다는 말의 다른 얼굴
피제나의 보고서에는 흥미로운 지표가 하나 나옵니다. ‘유효 종목 수’, 영어로는 Effective N입니다. 피제나는 약 2,400개 기업을 담은 MSCI 전세계지수(ACWI)의 비중 집중도가, 같은 금액씩 투자한 100여 개 종목의 포트폴리오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습니다.[2]
이 대목은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2,400개 기업이 실제로 100개 기업과 똑같이 움직인다는 뜻은 아닙니다. 나머지 기업에 투자한 돈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MSCI의 정의에 따르면 유효 종목 수는 각 종목의 비중을 제곱해 합한 값의 역수입니다. 쉽게 말해, 돈이 얼마나 고르게 나뉘어 있는지를 ‘같은 비중으로 투자한 종목 수’로 바꿔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기업별 주가 상관관계까지 반영한 위험 측정치는 아닙니다.[4]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숫자도 아닙니다. 종목 수가 많다는 설명 뒤에 가려진 비중의 쏠림을 드러내 주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기서 곧바로 “폭락이 임박했다”거나 “실제 분산 효과가 특정 종목 수와 정확히 같다”는 결론으로 넘어가면 지표가 말해주는 범위를 벗어납니다.
기업 이름이 달라도 같은 기대에 기대고 있다면
비중을 확인한 뒤에는 다른 질문이 남습니다. 서로 다른 기업들의 이익이 정말 다른 이유로 움직이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피제나가 AI를 이야기한 것도 이 지점입니다. 별개의 기업으로 나뉘어 있어도, 계속되는 AI 투자 확대라는 공통 요인에 기대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2]
예컨대 AI 설비 투자를 분석한다면, 부품을 공급하는 쪽의 주문 증가와 돈을 지출하는 쪽의 투자 부담을 함께 봐야 할 것입니다. 같은 투자 확대가 한쪽에는 매출 기회가 되고, 다른 쪽에는 수익화를 기다려야 하는 지출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든 관련 기업의 주가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주장이 아니라, 각 기업이 그 흐름의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보자는 이야기입니다.
제 생각에 ‘AI 관련주’라는 이름만으로 기업들을 한 덩어리로 묶는 것 역시 종목 수만 세는 것만큼 거친 판단입니다. 고객은 누구인지, 이익은 어디서 생기는지, 투자가 늦춰지거나 수익화가 지연되면 어느 부분이 먼저 흔들리는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결국 확인할 것은 회사 이름의 차이만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기업들의 실적과 가치평가가 서로 얼마나 다른 조건에 기대고 있는가입니다.
지수와 같이 움직이면 덜 위험한 걸까요
이 글의 출발점인 피제나 보고서 제목에는 ‘추적오차는 분산투자가 아니다’라는 표현이 들어 있습니다.[2]
추적오차는 포트폴리오와 비교 지수의 수익률 차이가 얼마나 변동하는지를 보는 지표입니다. 지수를 따라가는 ETF라면 이 차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입니다.[5]
그런데 지수를 잘 따라간다는 것과 계좌가 덜 하락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지수가 내려갈 때 함께 내려가는 포트폴리오도 지수를 충실히 추종할 수 있습니다. 분산투자 자체도 시장 하락 때 손실이 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아닙니다.[6]
반대로 지수와 다르게 움직였다고 해서 좋은 포트폴리오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차이가 의도한 위험 분산의 결과인지, 분석이 틀린 결과인지는 따로 판단해야 합니다.
피제나가 제기한 문제의식을 받아들이더라도, 그것이 곧 지수에서 멀어지는 모든 선택을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지수를 버리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지점에서 반대편의 논리도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수의 집중을 지적하는 것과 개별 종목이나 액티브 펀드의 우월함을 입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뱅가드는 시가총액 가중 방식이 시장의 구성을 반영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매매로 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강조합니다. 한 기업의 주가가 올라 비중이 커지는 경우, 그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반드시 추가 매매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입니다.[7]
따라서 지수에 집중이 있다는 사실과 지수의 투자 방식 자체가 잘못됐다는 판단은 구분해야 합니다. 뱅가드 역시 시가총액 가중이라는 구조만으로 대형주가 계속 더 커지는 원인이라고 단정하는 주장에는 반박합니다.[8]
동일가중 ETF로 바꾸는 방법도 정답이라기보다 다른 선택에 가깝습니다. 대형주의 영향력을 낮추는 대신, 같은 지수 안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의 비중을 높이고 정기적인 비중 조정에 따른 매매 부담을 떠안게 됩니다. 뱅가드는 이를 위험의 제거가 아니라 위험의 성격을 바꾸는 일로 설명합니다.[7]
분산을 고민하다가 또 다른 이름의 ETF를 늘리는 데서 끝나면, 처음의 문제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바꾼 상품이 어떤 위험을 줄이고 무엇을 새로 늘리는지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론
이 글을 쓰며 가장 중요하게 느낀 것은, 분산투자의 반대말을 단순히 ‘몇 개 종목에만 투자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상품을 고르는 단계에서는 ETF의 이름과 투자 대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계좌를 점검하는 단계에서는 그 이름을 잠시 지우고, 실제 보유 기업과 합산 비중을 펼쳐 보는 편이 낫겠습니다. 그다음에는 그 기업들의 이익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무엇이 잘못됐을 때 함께 어려워질 수 있는지를 물어봐야 하고요.
그 결과 지수 비중을 그대로 유지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특정 기업이나 사업 환경에 대한 노출이 의도한 것이라면, 집중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분산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같은 기대를 여러 상품으로 나눠 사고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분산투자는 ETF의 이름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내 판단 하나가 틀렸을 때 계좌 전체가 같은 이유로 흔들리지 않도록 생각해 보는 일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
참고 자료
[1] SEC Investor.gov, Asset Allocation and Diversification https://www.investor.gov/introduction-investing/getting-started/asset-allocation
[2] Pzena Investment Management, Third Quarter 2026 Commentary: Tracking Error is Not Diversification: How Many Stocks Does Your Index Really Own? https://www.pzena.com/apac/investment-professionals/insights/tracking-error-is-not-diversification-how-many-stocks-does-your-index-really-own-3q-2026/
[3] S&P Dow Jones Indices, S&P 500 Index https://www.spglobal.com/spdji/en/indices/equity/sp-500/
[4] MSCI, IndexMetrics, June 2020, p.52 https://www.msci.com/documents/10199/402635a5-fd5d-498e-985a-1bec8ff8d8b1
[5] Vanguard Canada, Index tracking https://www.vanguard.ca/en/tools-and-resources/etf-fundamentals/management/index-tracking
[6] SEC Investor.gov, Diversify Your Investments https://www.investor.gov/introduction-investing/investing-basics/save-and-invest/diversify-your-investments
[7] Vanguard, What to consider when choosing between index-weighting approaches, 21 July 2026 https://www.vanguard.co.uk/professional/insights/what-to-consider-when-choosing-between-index-weighting-approaches
[8] Vanguard, Setting the record straight: The truths about index fund investing https://corporate.vanguard.com/content/dam/corp/research/pdf/settingtherecordstraightthetruthsaboutindexfund_investing.pdf
면책: 이 글은 공시 자료와 분석, 글쓴이의 견해를 정리한 정보 제공용 콘텐츠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